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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3. 17:59 - 소명달빛

[소담소담 제10호] 션샘의 유럽학교 탐방기 ②독일편

션샘의 유럽학교 탐방기 ②독일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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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원 선생님과 별빛&달빛 유럽학교 탐방기는 3편으로 소담소담에 연재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영국편이고, 두 번째는 독일편 세 번째는 덴마크편입니다.


1.  모든 동기는 손에서부터 나온다 - ‘독일 발도로프 학교’

연수 두번째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추위가 매서웠어요. 새벽 미명에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소명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쳐 주신 황순도 선생님을 중앙역에서 만나뵙고,  함께 학교를 동행하기로 했는데 든든한 가이드가 생겨 감사한 순간이었어요. 본격적으로 독일학교 연수가 시작되었어요. 독일 학교탐방을 계획하면서 어느 학교를 방문할지 고민이 많았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독일식 교육에 관심이 점차 많아져 공립학교인 김나지움을 한번 방문하려 했으나 독일 교육의 힘은 발도로프라고 할 정도로 현지에서도 이 학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발도로프를 둘러보기로 최종적으로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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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의 외곽에 외치한 발도로프 학교. 유네스코는 21세기 교육개혁의 모델로 ‘발도로프학교’를 선정한 바있습니다. 얼마전 뉴욕타임즈는 ‘컴퓨터 안 쓰는 실리콘밸리’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주요 IT기업이 밀집해 있는 실리콘 밸리에 있는 발도로프학교에 대한 기사를 한번즘 읽어본 학생들도 있겠죠. 기사에 따르면 애플, 구글, MS등 많은 IT기업 종사자들의 자녀가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는 발도로프학교에 다닌다는 다소 역설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구글검색도 못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디지털-제로’방침을 고수하고 있다고 합니다. 디지털 혁명을 논하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지만 실제로 고교졸업자의 94%정도가 명문대학교에 진학하는 등 아주 높은 학력성취를 보이고 있죠. 놀랍습니다. 발도로프교육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목하는 것일까요? 저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발도로프학교는 1919년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시작한 학교로 그의 이름을 따서 슈타이너학교라고도 불립니다. 발도로프학교는 몸의 균형적인 발달 및 두뇌, 감성의 발달을 중시여기며, 머리.가슴.손의 통합을 통해 균형잡힌 전인격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참 거창하고 추상적이라고 느끼겠지만 실제로 발도로프를 둘러보면 선입견이 한 순간에 깨져버립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드라마교사인 불프Wulf는 기다렸다는듯이 학교를 둘러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900명 이상의 많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치곤 다소 공간이 작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우리가 본 건물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과를 위한 곳이었고 예술교육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학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의 뒷쪽엔 큰 정원이 있어서 원예를 배울 수 있으며, 학생들은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나무와 꽃을 기르는 법을 배웁답니다. 목공소는 기본으로 있고, 철로 각종 연장을 만드는 대장간, 심지어 돌로 조각을 만드는 석공소도 구비되어 있었어요. 뜨게질을 배우는 곳, 도자기를 만드는 곳, 무대공연을 위한 공간, 춤을 배우는 공간 등 학교 전체 중 예술을 배우는 곳이 반 이상이 될 법합니다. 이 정도면 가히 예술학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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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도로프 학교내에 위치한 대장간의 모습>


문득 궁금해졌어요. 왜 이렇게 예술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발도르프 학교의 독특한 수업 중에는 ‘오이리트미(조화로운 리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이들이 춤이나 마임 같은 몸짓을 제멋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신이 이해한 시와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운율, 음정 등 자신이 들은 것을 바탕으로 감성을 섬세하게 다듬고 표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신체활동은 아이들에게 학교를 즐거운 곳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즉 손으로, 몸으로 많이 만져보고 움직이면서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동기를 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랑 길게 얘기를 나눈 발도로프 교사는 ‘손’으로 직접 해 봐야 동기가 생긴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무대에 서 볼 수 있도록, 악기를 만질 수 있도록, 쟁기랑 연장을 잡고 밭을 갈아보도록, 돌을 다듬어보도록 시켜보는 것입니다. 발도로프교육은 예술교육이라는 좁은틀을 설정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동기를 가지게 하는 전인교육인 셈이죠. 그래서 비단 예술의 길을 가지 않는 학생이라도 모두들 예술을 통해 심미적 체험을 해 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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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 수업을 체험하는 별빛샘과 션샘>


둘째날 우리가 방문했을 때, 우리는 석공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어요. 보통 수업참관이라면 뒷짐지고 교실 뒷편에서 수업에 참여라기 보단 방관하기 일쑤인데, 석공을 가르치는 교사는(교사라기 보단 외지에서 조각가로 활동하시는 예술가였다.) 이탈리아산 대리석 큼지막한 것을 하나씩 안겨주며 직접 작업에 참여해 보라며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조각가가 되어 돌을 다듬어 보는 기회를 얻었답니다. 처음에는 돌가루가 자욱하게 날리는 채석장같은 작업실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돌가루 마시며 정과 망치를 잡고 보니 어느새 나도 조각가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서관 사서인 바바라가 준 커피를 들고 돌가루와 함께 마시는 기분이 적잖이 새로웠습니다. 석공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정을 두드려 돌을 두드리는 과정이 일종의 콘서트라고 했습니다. 무슨 콘서트냐구요? 정에 대고 망치를 하나, 둘씩 두드리는 돌소리에 귀를 대고 그 리듬을 느껴보라는 뜻이에요. 그러다보면 리듬에 맞게 돌을 두드리고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국어수업과 인문고전 수업만 했던 제게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한갗 자연물이었던 돌덩이 하나가 ‘나’라는 존재와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사는 많은 기교를 부리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일정하게 규칙적으로 돌을 치면서 재료와 친해질 수 있게 되는 것이 첫수업의 목표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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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공 작품(위)과 별빛샘의 작품인 소명^^>


어느 정도 돌을 친 후엔, 학생들 모두의 작품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0명 남짓한 학생들은 모두다 저마다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자신의 인생에서 어두운면과 밝은 면을 돌의 양면에다가 표현해 보는 다소 철학적인 작업이었습니다. 모두들 몇 달 동안 혼을 쏟아 만든 작품을 앞에 두고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학생은 아버지와의 어려웠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 활동을 하면서 관계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고백해서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예술적 치유를 경험한 셈이죠.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복잡다단한 심정들을 민낯으로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이라는 막으로 한번 걸러질 때 형상화됩니다. 그래서 예술은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이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즐겁게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석공수업은 몇 달 간 계속 됩니다. 한 작품을 만드는데 한 학기가 걸릴지도 모릅니다. 어두운 곳에 꽁꽁 감추어진 내면의 두려움을 예술로 다시 환원시키는 아름다운 시간. 오늘도 학생들은 그 기쁨을 맛보기 위해 돌을 두드리고 있을 겁니다. 



교실에 들어가 수학수업도 참관해 보았습니다. 소명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기전인 오전 8시면 이곳에서는 수업을 시작합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교실은 너무도 단촐하여 그 흔한 컴퓨터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수학교사는 우리나라 90년도에 쓰던 OHP를 가지고 수업을 하고 있었고, 벽에 있는 궤도는 손으로 하나씩 글씨를 써 놓은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발도로프에서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과 이로움보다, 아이들에게 미치는 해로움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 방이라 불리는 교무실에도 컴퓨터는 없습니다. 도서관에 몇 대 있지만 그마저도 학생들이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학교의 한 공간에서 학생들은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으나, 우리가 방문한 기간 동안 그 공간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멀티기기를 멀리하다보니 모든 수업활동도 아날로그식입니다. 학생들은 모두 만년필을 써야만 하고 색연필을 들고 다니면서 노트에 그림을 그립니다. 그날 우리는 평행사변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배우는 수업을 참관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얼른 공식을 알려주고, 응용 문제를 푸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텐데, 이곳은 전혀 접근이 달랐습니다. 빈 종이에다가 같은 평행사변형을 4개나 그려놓았고, 나중에야 알았지만 앞에 있는 3개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넓이를 구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었어요. 즉 답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하나의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니 마지막에 알려주는 공식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답이 아닌 하나의 샘플답안인 셈이죠. 이렇게 천천히 수업을 하다보니 넓이공식 하나 가르치는데 두 시간이 걸립니다. 응용문제는 마지막에 잠깐 맛볼 뿐이고, 그것도 숙제로 나갑니다. 주어진 시간에 속도전을 방불케 하는 일반적인 수학 수업장면과 많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수학을 배운다면 대한민국에도 수포자(=수학포기자)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게다가 발도로프학교는 교과서가 없습니다. 일정 학년까지는 일부로 교과서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가는 워크북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정답이 적혀있는 화려한 교과서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줄이 없는 도화지 같은 워크북을 모두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각자 가지고 있는 칼라펜으로 도형을 그려봅니다. 이렇게도 그려보고 저렇게 그려보면서 답을 찾아나갑니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사고과정이 하얀 백지위에 남게 되고 이것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는 셈입니다. 또한 발도로프에선 수업 중 자신의 말로 설명하는 것을 중시여깁니다. 우리가 수업에 참관했을 때에도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을 일부 학생들이 말로 설명해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는 것보다, 자신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이들은 공유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배움의 속도를 높이는 것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의 속도는 늘 느리지 않습니까? 느린 생명의 속도가 결국 진리에 먼저 닿는 법이라는  발도로프 배움의 현장의 메시지를 가슴에 남겨봅니다. 


발도로프학교를 얘기하면서 도서관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발도로프의 도서관은 일반학교의 도서관과는 느낌이 많이 다릅니다. 흡사 카페같다고나 할까요. 창문 너머에 차가운 곳에서부터 들어온  빛은 어느새  도서관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고, 도서관 사서가 만들어준 쿠키와 직접 내린 커피향내가 책 틈 사이로 베고 있었습니다. 조명 하나하나, 사진 하나하나 어느 하나 대충 만든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들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넘치는 발도로프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모두다 즐겁습니다. 두꺼운 책을 들고 와서 시험공부 한답시고 책에 머리박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습니다. 함께 체스를 두는 학생도 있습니다. 약간의 소음은 인정하기에 소근소근 속삭이는 백색소음이 도서관에 가득하나 커피의 향내와 햇살의 따스함과 잘 어울립니다. 이곳에서 몇 십년 째 근무하는 바바라는 오늘도 직접 쿠키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으며, 도서관에 쓸 커튼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책을 대출한답시고 컴퓨터를 쓰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바코드 같은 것도 만무합니다. 책들은 모두 난이도별로 색깔을 달리 표시해 놓았고, 필요하면 대출카드에다가 이름을 쓰고 빌려가면 됩니다. 따스한 도서관의 느낌이 참으로 정겨운 곳. 발도로프의 정신은 도서관에도 깊이 베어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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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로프의 철학이 담겨있는 도서관> 


발도로프에는 교장이 없습니다. 아니 교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학교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으면 팀을 만들어 그 일을 위임합니다. 리더십을 공유한다는 말은 책임감을 1/N로 공유한다는 것이니 자칫 리더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으나, 이 공동체에서는 오히려 여러명의 리더를 얻은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철저하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한 학생의 담임을 8년 정도 연속해서 담당한다고 합니다. 즉 학생이 진급하더라도 교사들이 함께 따라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 아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적어도 8년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철학인가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중시여기는 이들의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발도로프학교는 사람을 사랑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을 중시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서 모두가 함께 사랑해주고 기다려줄 수 있는 곳. 그 힘과 정신을 알기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보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국 FIC에서 이시원 선생님

 wonseeyi@hanmail.net

            

다음호에 마지막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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