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샘의 유럽학교 탐방기 ③덴마크편
‘거북이는 느려도 행복하다’
이시원 선생님과 별빛&달빛 유럽학교 탐방기는 3편으로 소담소담에 연재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영국편이고, 두 번째는 독일편 세 번째는 덴마크편입니다.
1. 학교에서 인생을 설계하다
덴마크 뢰딩 하이스콜레 Rodding Hojskole & 스키베룬트 skibelrund
덴마크는 참으로 특별한 나라입니다. 겨울철엔 영하 10~20도를 우습게 내려가는 추운날씨는 물론이거니와 하루 종일 있어도 해를 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일행이 3일동안 있었지만 밝은 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흡사 마귀가 입김을 불어놓은 듯한 음산한 안개가 하루 종일 끼어있거나, 폭설이 내리기 일쑤입니다. 이곳에 계속 살면 우울증에 거릴 것만 같았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 인구도 대한민국의 1/1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의 국민소득은 6만불이 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UN 에서 조사하는 행복지수에서 덴마크는 늘 1위를 차지합니다. 자원도 부족하고 땅도 좁은 나라. 무엇이 이 나라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덴마크 방문 전부터 관련 책들을 읽어보면서 덴마크인들을 만나면 당신들은 행복하냐고 꼭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당신들은 행복한 것인가요? 가슴 한가득 질문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자유학교였습니다. 자유학교는 덴마크 전역에 퍼져있는 일종의 사립학교로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선택하는 학교입니다. 덴마크는 정부에서 모든 교육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공립학교를 선택한다면 비용을 전혀 납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학교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수업료를 내고 오는 학생들입니다. 게다가 자유학교를 거치면 다른 학생들보다 1~2년 뒤지게 되는데, 무엇 때문에 이 학교에 오게 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먼저 방문한 곳은 덴마크 성인자유학교 중 가장 오래된 뢰딩 자유학교였습니다.
덴마크 서쪽 섬의 아주 작은 마을 뢰딩에 위치한 성인자유학교. 이곳에 5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생활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학생들로서 성인의 관문인 대학으로 가기 전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 보기 위해 스스로 1~2년의 시간을 갭이어Gap Year로 보내는 학생들입니다. 학생들은 대부분은 최소 2년 정도를 갭이어로 보내며, 많은 시간을 여행으로 할애합니다. 그리고 이런 성인자유학교에 와서 보내는 시간은 6개월 정도. 이미 성인이 된 학생들이 모여서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런저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학교의 기숙사에서 묵으며 학생들의 생활을 곁에서 관찰할 수 있었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의 일과 생활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함께 식사를 하고 나면 모두 함께 모입니다. 일종의 조회로 하루를 시작하는 셈입니다. 이들이 모일 때마다 공동체의 정신을 공유하는 방법은 바로 노래! 일종의 찬송가(실제로 찬송가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네요) 모음집 같은 책이 있어 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정신을 공유합니다. 물어보니 덴마크 사람들은 노래를 참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노래로 그들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모양입니다. 우리도 서툰 덴마크어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려보았습니다. 덴마크인들의 얼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맛이 참 구수하기만 합니다.
<덴마크 성인자유학교는 그룬투비라는 한 목사님의 노력으로 탄생했다>
자유학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그룬투비라는 한 목사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그룬투비는 목회자이자 농민, 교육자, 정치가, 찬송가저술가 등등 그는 그야먈로 덴마크인들을 이끌어가는 정신적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독일이 덴마크와 치열하게 전쟁을 하던 때로 당시 국경근처에 있던 뢰딩은 강대국이었던 독일로 편입될 수도 있던 때였습니다. 이때 나타난 그룬투비는 독일에 분노의 저항을 뿜어내지 말고 우리가 농민들을 흔들어 깨워 이땅을 개간하고 깨어있는 시민을 만들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것이 성인자유학교였습니다. 벌써 역사가 170년도 넘어섭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그룬투비 정신을 따르는 학교는 정형화된 교과서 대신 살아있는 말과 글을 중시여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농민운동은 한국의 농촌계몽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사실 소설 상록수의 등장인물 영신도 덴마크의 그룬투비가 모델인 셈입니다. 결국 살아있는 혼(魂)을 가진 한 목회자에게서부터 시작된 민족적 저항의식이 겨레동아리를 하나로 묶어 분노의 화염을 희망의 불씨로 만들어버렸던 것이죠. 지금도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은 희망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자신과 겨레 그리고 세계를 향해서 말입니이다.
자유학교는 보통 6개월간으로 진행되는 기숙사학교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러 오는 곳이기에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스스로 일을 하여 학비를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에서 일부 지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개인이 꽤 많은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문학, 예술, 정치, 미디어 등의 교과를 새로 배우게 됩니다. 수업은 교재가 있거나 칠판에 판서를 하는 전통적인 수업이 아닙니다. 모두다 편한 의자에 빙그레 둘러앉아 생각을 나눕니다. 교사가 주제를 던지면 보통 자유롭게 토론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세미나 형식입니다. 살아있는 말과 글을 중시하는 그룬트비정신을 엿볼 수 있는 수업방식이었습니다. 수업을 한 후엔 전체모임을 하거나 저녁시간에 함께 공동체활동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토론하여 결정하는 민주주의를 중시여기기에 모두 함께 토론하는 시간은 ‘과정’으로서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학교에서 필요한 물품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행사 하나를 준비해 나가는 것도 홀로 결정하거나 소수의 사람이 독점하는 일은 없습니다. 모두다 함께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왜 이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써 가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남들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도 시간이 부족한데 무엇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천천히 가기 위해 선택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식당에서 만난 몇 명의 학생들은 졸업생이었습니다. 마침 시간도 좀 있고 해서 다시 모교를 방문했고 이곳에서 함께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즐겁고 기쁜 표정이었다. 한 졸업생은 이 학교가 자신의 제2의 집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공동체를 통해 함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있던 서구사회에서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혼자 가는 것이 너무나 벅차고 힘들어 서로 안아주고 함께 어깨를 걸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듯했습니다.
정치교사였던 엔즈Jens 의 초대로 우리는 한 시간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을 뒤에서 구경하기 위해 참관한 것이 아니라 교실 한 가운데서 함께 토론을 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아주 의미있는 기회를 제공받았습니다.
<정치수업에 직접 참여하는 션샘과 달빛,별빛샘>
참관했을 때 수업 주제는 ‘교육과 사회’라는 묵직한 주제였습니다. 한국 및 덴마크의 교육과 사회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두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간극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덴마크는 서열을 매기거나 줄을 세우는데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표준화된 시험을 쳐 본 적도 별로 없으며 그걸로 서열을 매기는 것은 더더욱 낯설었습니다. 그러면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꼭 경쟁력이 있어야 하느냐고 답문해왔습니다. 덴마크에서는 모두다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며, 누군가가 먼저 달려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지만 아무도 불만이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다시 나를 지켜준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학력의 전문직과 저학력의 단순직의 임금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 굳이 머리싸매고 공부해서 고학력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천천히 행복하게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1시간 이상 진행된 수업시간 동안 덴마크 학생들은 모두 열심히 토론에 임했습니다. 모두다 아주 열성적이었습니다. 나는 덴마크에 와서 꼭 물어보고 싶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행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이 나라에 사는 것이 행복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덴마크인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세요?”라고 말입니다. 주저없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은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그 대답은 여러가지였으나, 한 마디로 말하면 ‘공동체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내가 힘들어도, 누군가가 내가 쓰러질 때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 결국 그 믿음으로 인해 모두들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내나라에 대해서 저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행복하다는 저들의 표정이 참으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덴마크 자유학교의 철학을 보여주는 조형물>
우리나라는 삶의 속도가 참으로 빠른 나라입니다.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을 따라 정신없이 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를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천천히 걷다가는 바보취급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신없이 달리는 그룹의 선두에 선다하더라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아 보입니다. 행복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 꼭대기에 뭐가 있을 것 같다는 환상만 가진채 끝도 모를 곳을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숙고해 보지 못한채 우리는 대학생이 됩니다.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북유럽 중에서도 갭이어(Gap Year)는 덴마크에서만 운영하는 독특한 학교제도로 이 기간동안 젊은이들은 ‘나’에 대해서 생각하며 너와 함께 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그래서 갭이어 기간 동안 여행을 하며,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행’ 그리고 ‘공동체’! 오랜 기간 동안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생각해 낸 두 가지 키워드였습니다.
유럽학교 탐방기를 마치며...
참으로 먼거리를 오가는 기나긴 여행이었습니다. 저기 유럽의 서쪽 끝에서부터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유럽 한복판인 독일을 가로질러 북쪽의 덴마크까지 머나먼 길을 떠나왔습니다. 길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곳에 다시금 길이 시작되는 법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을 마치려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점에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나 가장 불행한 우리 대한민국의 다음세대들! 저들의 혼(魂)을 흔들어 깨우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일이 우리 교육자들에게 맡겨진 과업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 길을 함께 가는 우리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땅의 고통은 교육의 고통입니다. 유럽의 학교의 좋은 사례들을 소명학교에서 하나둘 잘 정착시키고 적용 발전시켜 한국교육의 대안이 만들어지길 조용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국 FIC에서 이시원 선생님
wonseeyi@hanmail.net
<영국연수기간에 영국에서 함께했던 시간들>
<14박 15일의 유럽학교 탐방 동안의 소중한 시간>
<이시원 선생님과 달빛&별빛, 지예가 함께한 만찬>
- 이상으로 션샘의 유럽학교 탐방기 연재 ①,②,③을 마칩니다. 애독해 주신 소담소담 구독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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