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학년 성경 졸업에세이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
“사람을 위한 음악은 음악의 변질 가져와”
“가요계의 흐름을 바꾸기보다
음악을 듣는 자세를 바꿔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 세상은 타락했다. 인간들의 욕심과 죄악으로 인해 세상의 문화들은 타락하게 되었고 다시 되돌리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지만 결국 서서히 그 문화들에 익숙해져 가며 공존해가는 크리스천들도 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이다. 영감을 떠올리게 해주고, 감정을 변화시켜준다. 길거리를 돌아다녀도, 웹서핑을 해도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음악. 그러나 우리는 아무음악이나 들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는 찬양받고 싶어 하셨다.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을 악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창조적 개발의 능력까지 주셨다. 최초의 악기는 사람인 것이다. 이 최초의 악기는 하나님을 위해 입을 열어 노래하고, 노래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창조된 음악이라는 문화가 어떻게 타락하게 되었을까?
지금은 음악의 장르에서 종교음악이 따로 나뉘지만 처음에는 같았다. 최초의 노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였고 음악을 사용하는 용도 역시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을 위해, 자신들의 삶에 대해 노래하면서부터 음악의 길은 갈렸다. 자신들에 대해 노래하던 음악은 주변의 사물에 이르렀고, 제사에 사용되며 음악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악마에 대해, 잡귀신에 대해 노래하며 점점 타락해갔고, 결국 무시무시한 음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우리가 자주 듣는 가요의 위험성은 무엇일까? 나는 크게 가사, 중독성, 상징적 의미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주 즐겨듣는 가사들을 살펴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욕설은 기본이며 성(性)적인 단어들이 여과없이 들어가 ‘놀란다’는 표현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보편화 되어있다. 날이 갈수록 더 자극적인 제목과 가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데자-부 (Deja-Boo) (Feat. Zion.T) EXID| 위아래 Apink LUV. 정승환 K팝 스타 시즌4 `사랑에 빠지고 싶다`,규현(KYUHYUN 광화문에서 (At Gwanghwamun)`, Problem (Feat. Iggy Azalea) (SBS 케이팝스타 시즌4 서예안 가창 곡) Ariana Grande, AOA 사뿐사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음원 사이트에서 가져온 음원 top7이다. 그 중 현재 낯 뜨거운 가사로 구설수에 오른 ‘위아래’라는 곡 역시 있다. 나는 위의 곡들을 한번 이상은 모두 들어보았고 이 음원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있는 곡 중 한곡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곡의 제목은 그 음악이 어떠한 내용인지 짐작케 해주는 역할을 한다. 제목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는 말인데 제작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음악의 완성도보다는 화제에 오를만한 제목 제작에 신경을 쓴다. 아예 자체적으로 19금(禁) 딱지를 달고나와 노이즈마케팅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기만 하면 되지 왜 가사와 제목에 신경을 쓰냐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속에 이러한 가사들은 입력된다. 마약, 알코올, 섹스에 관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직 가치관이 덜 형성된 청소년들에게는 매우 위험하다. 무의식이란 빙산의 아랫부분과 같아 우리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들이 발달한 지금 거의 대부분의 음악은 중독성이 있다. 특히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감을 할 텐데 게임을 할 때 흘러나오는 음악은 매우 중독성이 있어 게임을 하지 않아도 듣고 싶어진다. 팝이나 뉴에이지, 후크송 같은 장르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중독성 강한 멜로디를 이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듣고 싶게 만든다. 만약 잘못된 의미나 가사,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곡이라면 중독이 강한 멜로디를 사용했을 때 그 악영향은 배(培)로 될 것이다. 요즘 십대들이(나를 포함한) 불경건한 음악을 듣는다고 많이들 싫어하시는데 이렇게 신나고 계속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지루한(물론 지루하지 않은 ccm들도 많다.) 노래를 들을 수 있겠는가?
상징적 의미는 사람들마다 해석하기에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누가보아도 이건 의도적이다 싶은 가사와 춤들이 있다. 요즘은 이것을 이용해 자극적이고 저속한 의미를 가진 춤을 추어 유명해지는 가수들이 많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많은 십대들이 이들의 춤을 따라하고 동경한다. 대표적으로 위에서 말한 ‘위아래’라는 노래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실 이 노래는 sns상에 올려진 동영상속 춤이 몹시 야해(?)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이 노래는 금세 음원 순위 1위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 위력을 지금까지 떨치고 있다. 결국 이 안무는 경고를 받았고 이 걸 그룹은 안무를 바꾸어 활동을 재개하였다. 바뀐 안무를 보고 아쉬워하는 사람 역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익숙해짐’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이 춤이 막 나왔을 때 비판의 목소리가 컸는데 그 소리는 싹사라지고 춤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남았던 것은 어느새 익숙해져 비판의 여과망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의 타락함은 연예계의 타락에서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을 아예 안 듣고 살 수 는 없다. 어디를 가든 흘러나오는 것이 가요인데 귀를 막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 해야 다시 원래 의미의, 창조목적을 갖춘 음악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만 우리의 문화생활의 형식을 바꾸어야 한다. 가요계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의 나이또래들이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만약 가요계나 음악 쪽으로 나갈 생각을 갖고 있다면 제대로 된 음악을 만들기 위해, 부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또한 꼭 미래에 커서야만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음악을 듣는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듣는 곡을 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르의 곡을 폭넓게 듣고 귀를 넓히는 것이다. 또한 조심해서 듣는 것이다. 음악을 편식해서 듣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곡이나 듣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외국어로 된 가사라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어디를 가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는 습관은 좋지 않다. 잠시나마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역시 좋다. 사실 음악이라는 범위가 너무나 광범위하고 넓어 이러한 작은 노력들로 원래 의미의 음악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 힘들다면 나 자신부터 마꾸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하나님나라에 대해 궁금해 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상상들도 많이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내 머릿속 안에는 하나님나라가 잡혀있게 되었다. 분명 천국에도 음악이 있고 악기가 있을 것이다. 과연 천국에서의 음악은 어떠한 모습일까? 나는 그것이 지루하고 잔잔한 찬양 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나고 밝은 분위기의 음악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음악들은 창조의 이유를 담고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완성된 음악이라는 이야기이다. 사실 요즘 하나님나라로 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내가 이 글에서 비교해놓은, 비판한 음악들이 그곳에서는 어떻게 자리 잡고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계열의 노래들 역시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완성된 음악에 더 다가가기를 노력해야겠다.
소명중고등학교 9학년 송하민 학생
※ 이 글은 소명중고등학교 9학년 성경 수업의 졸업 에세이 중 송하민 학생의 에세이를 발췌하여 수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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